덮음과 폭발 사이, 지층 위의 상흔들

 

 

황지원

 

2025

 

 

 

 

“감각이란 쉬운 것, 이미 된 것, 상투적인 것의 반대일 뿐만 아니라, ‘피상적으로 감각적인 것’이나 자발적인 것과도 반대이다. 감각은 주체로 향한 면이 있고, (신경 시스템, 생명의 움직임, ‘본능’, ‘기질’ 등 자연주의와 세잔 사이의 공통적인 어휘처럼) 대상으로 향한 면도 있다. (‘일’, 장소, 사건) 차라리 감각은 전혀 어느 쪽도 아니거나 불가분하게 둘 다이다. 감각은 현상학자들이 말하듯이 세상에 있음이다. 나는 감각 속에서 되고 동시에 무언가가 감각 속에서 일어난다. 하나는 다른 것에 의하여, 하나가 다른 것 속에서 일어난다.”¹

 

 

단어가 사라졌을 때, 이미지만이 남아 있었다. 사건 이후 언어가 결핍된 자리에서, 이미지는 가장 익숙하고 안전한 언어가 되었다. 무기력하게 침대에 누워 있을 수밖에 없었던 시간 동안 시선은 늘 벽에 고정되었고, 하얀 표면 위에는 의식과 무의식이 교차하는 장면들이 투사되었다. 이 장면들은 완결된 이야기가 아니라, 들뢰즈가 말한 ‘감각의 사건’처럼 단속적으로 도래하며, 보는 이의 신경계와 피부를 동시에 자극한다.

정경빈 작가는 특정 사건 이후, 삶과 죽음, 고통, 병, 치료, 그리고 신체와 신체의 감각에 시선을 고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곧 삶의 전부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의 작품은 필연적으로 고통과 트라우마로 출발한 정동을 담아냈다. <하얀벽> 연작에서 주요 캔버스의 크기는 싱글 침대와 같다. 이는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병상에 눕는 몸이 차지하는 물리적·심리적 공간을 회화로 치환한 것이다. 하얀 물감이 주조하는 표면 위로, “벽 사이에서 분출하는 물, 기념비, 분수의 장면, 눈가의 주름과 벽이 녹아내리는 환상 그리고 흐르는 살점들, 살가죽을 벗기는 고문과 멍든 피부, 손등의 주름과 예수의 몸의 들림, 한 공간에 갇힌 몸이 날짜를 세는 행위와 몸을 덮는 이불”이 겹쳐진다. 특히, <하얀벽_토르소>(2022), <하얀벽_스킨>(2022), <하얀벽_나를 만지지 마라>(2023), 

<하얀벽_수많은 날들>(2023)은 하얀색이 전통적으로 품고 있는 평온, 무구함의 상징을 전복하며, 덮음과 드러냄, 보호와 폭로 사이를 진동한다. 나아가 덮고 감추는 동시에 드러내고 상처를 환기한다. 회화는 이때 누워있거나/움직일 수 없거나/속박된 몸의 프레임이자, 고통을 압축한 표면이 된다.

 

다른 한편으로, <하얀벽_스킨>(2023), <하얀벽_살들과 땅>(2023), <하얀벽_살과 뼈와 땅>(2023)과 같은 소제목은 작가가 지속적으로 신체와 땅 사이를 주목해 왔음을 드러낸다. 아직은 샛분홍으로 표현된, 말 그대로 살과 뼈와 땅은 치유 이전의 피부처럼 연약하지만 그 속에서 생과 사의 지점을 암시한다. 그러다 <하얀벽_바디>(2023)에서 땅에 묻힌 듯한 신체의 흔적이 추상적으로 드러난다. 또한 흰색과 옅은 청록색 사이 피처럼 검붉은 색이 두텁게 자리한다. 그 색은 “지금 내가 밟고 있는 땅은 어떤 땅인가,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라는 질문을 품는다. 작가에게 땅은 단순한 장소가 아니라, 전쟁과 학살, 권력 구조의 흔적이 퇴적된 감각적 지층이다. 땅은 랑시에르가 『역사의 형상들』에서 말하는 ‘감각적인 것의 배치’를 바꾸는 장이 된다. 보이지 않던 폭력의 흔적이, 회화라는 형식을 통해 새롭게 보이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회화에는 개인적 고통의 언어뿐 아니라 자연스럽게 역사적 폭력의 언어도 스며 있다. 작가는 뉴욕을 시작으로, 제주, 대전 등 다양한 땅들의 역사를 리서치하며, 전쟁, 집단 학살, 권력 구조를 꾸준히 탐구해 왔다. 그러나 그 시선은 언제나 몸에서 출발한다. 몸은 세계의 축소판이며, 세계는 몸의 확장판이기 때문이다. 땅과 몸의 관계를 따라가다 보면, 작가의 회화는 일종의 병리학적 해부와 고고학적 발굴을 동시에 수행하는 장이 된다. 피부의 주름과 땅의 균열, 피의 색과 토양의 색, 상처의 회복과 식물의 성장… 이러한 유비는 개인적 고통과 집단적 상흔을 하나의 감각 구조로 겹쳐 놓는다.

 

화면 전체를 붉음으로 채우며, 피와 살의 물질성을 전면화한 <붉은 살덩이>(2024)는 단순한 형상만으로도 신체를 환기시킨다. <민중>(2025) 시리즈 역시 붉은 톤을 종이 위에 거칠게 밀어 넣으며 집단적 신체의 감각을 구성한다. ‘민중’은 특정한 인물이 아니라, 억압과 폭력의 역사 속에서 쓰러지고 다시 일어서는 집단의 몸이다. 작가는 이 붉음이 제주 4.3 사건, 특히 현기영의 『순이 삼촌』에 담긴 학살의 기억에 영향을 받았다고 말한다. 학살터 이후 땅속에서 자라난 고구마와 그 형태가 겹쳐지는 신체 이미지 속에서 죽음, 부패, 소멸 그리고 생명의 재생이 교차한다. 이제 작가에게 붉음은 피와 살의 기호인 동시에 저항과 연대의 색으로 작동하며, 땅의 과거 기억을 현재의 정치적 감각으로 변환한다. 붉은 결 속에 새겨진 형상과 질감은 폭력의 흔적이자 감각의 덩어리다. 들뢰즈가 말한 ‘감각의 물질화’가 극대화되는 순간, 붉음은 단순한 색이 아니라 사건 자체로 작동한다.

 

하얀벽의 침묵과 붉은 살덩이의 폭발은 서로를 비춘다. 전자는 무채색의 압축 속에서 고통을 삼키고, 후자는 색과 질감의 과잉 속에서 고통을 토해낸다. 이 두 축은 덮음과 드러냄, 침묵과 외침, 봉합과 파열의 양극을 오가며, 개인적 통증과 집단적 상흔을 하나의 회화적 문법 안에 병치시킨다. 정경빈의 회화는 표면을 발굴하고, 내부를 해부하며, 감각과 기억을 번역하는 병리학적이면서도 고고학적인 작업이다.

 

 

 

 

¹ 질 들뢰즈, 『감각의 논리』, 하태환 번역, 믿음사, 2008, p. 47